MayBeMayBe

MayBeMayBe

Posts Tagged ‘Military

Northeast Asia…

leave a comment »

 

 

 

..

연합뉴스 2013.07.26

中 구축함·군용기 일본 해역 잇단 움직임

..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ArticleGraphic/YIBW_showArticleGraphicPopup.aspx?contents_id=GYH20130726000600044&from=search

연합뉴스 2013.07.26

..

연합뉴스 2013.07.26

<중·일 센카쿠대치 심화…日 참의원 선거 영향?>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3/07/26/0603000000AKR20130726151400073.HTML

일본 방위성은 중국 해군 구축함 등 5척이 지난 2일 대마도해협을 통과한 뒤 25일까지 일본열도를 시계 방향으로 일주하는 항해를 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군함이 일본을 일주하는 형태로 항해한 것이 확인된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함께 중국군의 조기경계기인 윈(運)-8 1대가 지난 24일 처음으로 오키나와(沖繩)와 미야코지마 사이 공해 상공을 오가는 왕복비행을 했다고 방위성이 발표했다.

..

..

중앙일보 2013.07.05

[김영희 칼럼] 북한 비핵화 vs 한반도 비핵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5&aid=0002273490

..

… 말한 것과 대조적으로 시 주석은 “우리 양측은 ‘한반도 비핵화’와 대화·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한국 측은 북한 비핵화에, 중국 측은 ‘한반도 비핵화’에 초점을 맞췄다.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는 중국의 장기적인 전략적 목표다. 중국은 통일 이후의 한반도 비핵화를 시야에 두고 있다. 그것은 통일된 한국의 핵 개발 및 보유와 미군의 전술핵 재배치까지 미리 차단하자는 중국다운 긴 포석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단기적으로는 비핵화 프로세스를 최대한 지연시키고,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핵무장을 차단하기 위해 자신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한다. 중국은 통일한국의 핵 보유를, 북한은 한국의 핵무장을 염두에 두고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 칼럼 나머지는 읽을만한 내용이 없는 듯…

..

..

조선일보 2013.07.16

[지해범의 태평로] ‘한반도 非核化’에 문제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3&aid=0002548381&sid1=001

..

중국은 ‘한·중 미래 비전 공동성명’ 북핵 부분에 ‘북한’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그 결과 성명은 ‘북한 비핵화’ 대신 ‘한반도 비핵화’, ‘북한 핵개발’ 대신 ‘유관 핵무기 개발’이란 모호한 말로 채워졌다.

일부 연구자는 ‘한반도 비핵화’ 용어가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기도 전에 한국에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60여년의 발전 성과를 송두리째 파괴할 수도 있는 북한 핵무기에 대응해 우리 정부는 미국 전술핵 재반입이나 자체 핵 개발 같은 카드를 대북·대중·대미 협상에 활용할 수 있는데도, ‘한반도 비핵화’ 합의로 스스로 발목을 묶었다는 것이다. 아산정책연구원 김한권 연구위원은 “(이 때문에) 중국은 그토록 우려하던 ‘동북아 핵(核) 도미노’ 현상을 차단하는 실익을 거두었다”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는 중국이 남북한과 관계를 동시에 강화해 대미 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 입장에서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것과 북한 정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동시에 추구하기는 어렵다. 중국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를 바라지만, 그것을 위해 식량·에너지 중단 같은 강력한 압박을 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했다가 북한 정권이 붕괴하거나 사회 안정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 요 칼럼도 별로 읽을만한 것은…

..

한겨레에 실린 칼럼도 ㄴㅔㅇㅣ년, 검색에 떳지만 칼럼 읽다 말았음…

..

..

..

..

돈도 많아서 이겠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이 한국보다 우선순위가 높을 것이고 미군이 또한 주둔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것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특별한 상황에서 미국은 믿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것 아닌가…

중국이 커가고 돈도 많아지게 되면, 미국에서 일본은 중국과 사이에 낀 협상 대상일 수 밖에…..

자신 집은 우선 자신이 지켜야고, 그래도 억울하다면 파출소에 신고를 해야하겠지…..

파출소가 어딘가에 있다고 자기 집을 지키지 않을것인가…

..

..

..

제일 위에 달린 연합뉴스 그림에서… 중국 구축함과 군용기가 일본 해역만 간 것은 아니다. 또한 한국 해역 “근처”이지 않은가…..

..

..

..

 

NYTimes 2013.05.25

Asian Tensions and the Problem of History

http://www.nytimes.com/2013/05/25/opinion/global/asian-tensions-and-the-problem-of-history.html?pagewanted=all

..

요것은 읽다가 말았음..

..

..

Advertisements

Written by MayBeMayBe

July 26, 2013 at 23:21

Posted in Reading

Tagged with

People’s Liberation Army

leave a comment »

 

 

..

..

=================================

글을 읽어 본 것은 아님.. 앞으로도 읽어 볼 것 같지도 않고…

우선은 링크만……

자료는 그래도 어느 정도 공개는 하는 듯….

공군과 해군력, 특히 항공모함 정보 좀 구하고 싶기는 하다…..

군사비(군사예산) 예산 정보는 여기 저기서 보았던 기억이 있고……….

..

..

..

Wikipedia – People’s Liberation Army

..

Wikipedia – People’s Liberation Army Navy

..

Wikipedia – People’s Liberation Army Air Force

..

FAS – China Munitions and Weapons Systems

DOD – Annual Report to Congress, Military Power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11

..

DOD – Annual Report to Congress

..

..

FAS – CHINA DEBATES the FUTURE SECURITY ENVIRONMENT

 

..

FAS – JAPAN, Nuclear Weapons Program

..

..

..

 

 

 

Written by MayBeMayBe

February 19, 2013 at 23:38

Posted in Reading

Tagged with

세계전쟁사 – 2차 세계대전, 프랑스 전역…..

leave a comment »

 

 

 

..

세계전쟁사

..

육군사관학교 전쟁사학과

..

==================================================

이렇게 책을 맘대로 베껴도 되나 모르겠다. 며칠 읽었는데 읽을 때 마다 전율을 느낀다.

밑에 Manstein Plan에 대해 설명이 달렸지만,………

여기서 실린 지도 보다는 “세계전쟁사-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에 있는 지도가 더 자세히 각 나라별 병력 이동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더 자세히 알기 쉽게 설명된 지도가 없나 찾아 보았지만 만족할 만한 것은 없었고 가장 밑에 있는 지도가 그나마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Wikipedia에 있는 지도는 별로 맘에 들지는 않고…

독일-러시아간 전쟁과, 뒤이은 미국의 참전과 연합군의 반격….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이 남아 있지만 앞으로는 책 내용을 베끼는 일은 없을 듯…

솔직히 찔린다….

책이 없는 곳에서도 나중에 생각나면 다시 살펴 보기 위해서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곳만 이곳으로 옮겨 적고 있는데, …

프랑스 전역을 보게 되면 지도상에 나타난 이동 거리와, 그리고 그 시간에 집중해서 보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도 다시 슐리펜 계획(Schlieffen Plan)등이 사용되고 있다…

..

많이 인용되는 마지노선(Maginot Line)의 허구성과 결과적으로 잘못된 믿음…..

과신 그런 것도 재미있다. 기습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도 이해가 좀 되고 심리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상상이 되고…

..

세계전쟁사에 인용된 지도는 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발간한 ,

“United States Military Academy, Summaries of Selected Military Campaigns(West Point, New York : US military Academy, 1953)”라는 책에서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이 책도 어떻게 구하고 싶다.

구글 검색을 해 보니 있기는 하지만…..

..

고정된 사고를 깨고 그것을 역이용한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모든 것을 건다는 것….

제한적인 전쟁이 아닌 전면전을 벌인다는 것도 생각해 볼만한 일이고…

..

==================================================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프랑스 전쟁….

..

http://en.wikipedia.org/wiki/World_War_II

..

..

..

마지노선(Maginot Line)

http://en.wikipedia.org/wiki/Maginot_Line

..

..

프랑스 전역….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France

..

Manstein Plan

http://en.wikipedia.org/wiki/Manstein_Plan

..

..

Manstein Plan

..

..

..

..

*저지대 나라 – 밑에 있는 지도를 보면 고도(땅 높이) 정도가 같이 표시되어 있다. 프랑스와 독일 국경이 직접 붙어 있는 지역(마지노선 쪽)을 보면 고도가 높은 주황색 지역이고, 상대적으로 네덜란드 벨기에 쪽은 땅높이 색이 하얗다.

 

..

Source : http://www.laird.org.uk/Scots/51st_Division_at_St_Valery.htm

..

..

2차 세계대전, 프랑스 전역…..

..

1. 일반상황 및 작전지역의 특성.

2. 양군의 작전계획 및 전력배치

연합군의 전쟁계획은 주로 영구요새에 크게 의존하는 방어전략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의 마지노선(Maginot Line)으로서 이것은 스위스 국경지대로부터 몽데디(Montmedy)까지 연결된 요새지대이며 Painlev 국방상 때에 구상하여 Maginot가 1930 ~ 1934년 사이에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Montmedy에서 해안까지의 벨기에-프랑스 국경지역에는 연결된 요새가 아닌, 띄엄띄엄 고립된 소규모의 축성진지들이 있을 뿐이었다. 특히 Ardennes 삼림 배후지역에는 요새시설이 거의 없었으며 프랑스는 수풀이 우거진 산악재대와 Meuse계곡을 큰 방호물로 여기고 있었다. 프랑스인들이 철벽같이 믿고 있었던 Maginot Line 방어개념이란 강력한 국경 수비대를 유지하여 독일의 어떠한 공격도 여기에서 지연시키는 동안 국내에서 동원을 완료하고. 아어서 반격을 취한다는 제1차 세계대전식 개념에 입각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프랑스국민들은 “가장된 안전의식”속에서 살게 되었다.

한편 벨기에의 전방방위선은 앞서 살펴본 Albert canal(알베르 운하)와  Meuse 강을 따라 전개되어 있었는데,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시킬 목적보다는 지연시킬 것을 더 큰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Albert 운하선을 상실할 경우에는 Antwerp로부터 Schelde와 Dyle 두 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뒤 Namur 근방에서 Meuse강과 연결되는 Dyle Line에서 방어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러한 2중의 방어선 가운데 중요한 요충지는 역시 Liege와 Namur였는데, 벨기에는 1914년 독일군이 Liege 북방을 돌파하였을 때와 같은 비국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Meuse강과 Albert 운하가 연결되는 지점에 Eben Emael요새를 새로이 구축하여 보강했다.

네덜란드의 방어진지는 3중으로 되어 있었는데, 주로 특유의 지리적 특성을 살려 북쪽의 Zuider Zee를 비롯한 저지대를 침수시키는 방위체제였다. 최전방진지는 지연진지였고 중앙에 있는 Grebbe-Pee Line이 주방어진지였으며, 최후로 Roterdam, Hague, Amsterdam을 지키기 위한 네덜란드요새가 있었다.

즉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엄격한 중립을 고집함으로써 연합군은 명확한 방어계획을 수립하기가 매우 곤란했던 것이다. 독일이 침략을 개시할 경우에는 Maginot Line에 대한 정면공격을 회피하고 저지대로 통해서 올 것이 확실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프랑스 양국이 독일의 공격 이전에 벨기에, 네덜란드에 개입한다는 것은 저지대 나라들의 중립을 연합국 측에서 스스로 짓밟는 행위였던 것이다.

연합군쪽의 작전 계획 변경…..

Plan E, Plan D…

..

연합군 쪽의 병력 배치….

독일군의 작전계획을 보면 그들은 우선 작전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네덜란드 점령작전을 하나의 독립된 전역으로 분리시켰다. 이것은 강폭이 넗은 Rhine 강 하루 Waal강과 Meuse강 하류로 인하여 네덜란드 지역의 대부분이 사실상 기타 서부 유럽지역으로으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네덜란드를 떼어놓고 나서 독일이 공격을 취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Maginot Line 북단인 Longuyon으로부터 Rhine강 하류 쪽에 있는 Nijimegen까지의 지역만이 남게 되는데, 이 지역은 다시 Liege와 Namur 주변의 견고한 요새지대로 인하여 남쪽으로 양분된다. 따라사 독일은 주공을 Liege 북방에 두느냐 아니면 남방에 두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독일국방군 최고사령부는 최초에 Ardennes 삼림지대를 치하여 Liege 북방으로 침공하는 슐리펜식 기동계획을 수립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황색계획(Fall Gelb : Plan Yellow)”이었다. 그런데 당시 A집단군 참모장이었던 Manstein장군은 이 계획에 반대하고 Liege 남방인 Ardennes 쪽에서 주공을 취하자고 주장하였다. Manstein 장군의 견해에 따르면 황색계획은 슐리펜 계획의 반복이기 때문에 기습을 달성할 수 없고, 연합군의 주력과 조우하게 될 것이 예상될 뿐만 아니라, 비록 이 계획이 성공할 경우라 할지라도 연합군을 후퇴시키고 해협 항구를 점령할 수 있을 뿐, 적에 대하여 섬멸적인 타격을 가할수는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Ardennes 지역으로 주공을 실시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 기습효과를 거둘 수 있다. Ardennes 지역은 연합군이 소홀히 생각하여 병력배치가 약할 뿐망 아니라, 비록 지형이 험하다고 하지만 기갑부대의 기동은 가능하며, 울창한 삼림은 오히려 부대기동을 은폐시켜주기 때문에 연합군의 의표를 찌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일단 돌파에 성공하면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을 분리시킬 뿐만 아니라 독일군 주공이 Sedan을 도하하여 돌파하게 되면 프랑스군은 파리에 대한 위협을 느껴 수도방위상태에 들어갈 것이며, 영국군은 그들 병참선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해협 항구에 주의를 돌림으로써 양분되기 쉽다. 북프랑스 및 벨기에 방면에 배치된 연합군의 배후를 통하여 해협까지 용이하게 진출함으로써 북부에 주둔한 연합군의 주력을 차단 포위할 수 있다. 이것이 소위 “회전문(moving door)”의 개념인 것이다. 셋째, 국프랑스 및 벨기에 주둔 연합군의 보급로를 조기에 차단할 수 있다.

이렇게하여 독일군은 주공을 Liege 북방으로부터 남방으로 옮기고 주공부대인 A집단군에 10개 기갑사단 중 7개 사단을 배치하는 등 총 44개 사단을 집중하였던 것이다.

독일군의 공격계획은 전반적으로 볼 때 2단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1단계는 돌파로부터 해안까지의 진격을 통하여 연합군의 주력인 좌익을 완전 포위한 다음 섬멸하는 단계로서, 이를 위하여 Bock의 B집간군이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대하여 조공을 실시하고 Leeb의 C집단군이 Maginot line 정면에서 견제공세를 취하는 동안에, A집단군은 Ardennes 지역을 돌파하여 해안까지 진격함으로써 Somme강 이북의 연합군을 차단 포위하고, 이어서 B집단군과 협조하여 이를 섬멸토록 되어 있었다. 제1단계작전 중 네덜란드 방면에 대한 조공부대는 독일군의 우익 엄호와 더불어 연합군의 네덜란드 상륙을 저지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으며, 벨기에 방면에 대한 조공부대는 연합군을 벨기에로 유인해 들여옴과 동시에, 나중에 가서 포위망을 좁힐 때 포위된 연합군의 좌익을 고정시키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었다.

작전의 제2단계는 제1단계작전이 완료되자마다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실시하되, 조공인 B집단군이 Somme강 하류에서 남서쪽을 진격하고, 주공인 A집단군은 파리 동부를 돌파하여 프랑스군을 Maginot line 배후 쪽으로 몰아붙인 다음 C집단군과 협조하여 섬멸시킨다는 것이었다.

3. 작전경과

1940년 5월 10일 자정부터 새벽까지 독일군은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대하여 무차별폭격을 가한 후 일출 무렵이 되자 지상군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낙하산 부대는 Rotterdam과 Hague 부근에 투하되어 Waal강과 Maas 강 위의 주요교량을 비롯한 교통의 요지들을 장악하였다. 네덜란드에 침공한  Kuechler장군의 제18군은 3개종대로 나뉘어 Groningen, Utrecht 및 Breda 방면으로 맹진격을 개시함으로써 당일로 네덜란드의 제1, 2 방어선을 돌파하였다.

이튿탈 프랑스 제 7군은 독일 공군의 치열산 공중공격을 무릅쓰고 네덜란드군을 지원하기 위해 Breda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이틀이 못 가서 이들은 격퇴 당했으며, 네덜란드군의 최후방어선인 네덜란드 요새지역으로 몰리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Wilhelmina여왕과 네덜란드 정부는 Winkelman장군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네덜란드의 붕괴는 이제 시간문제였다. 14일이 되자 독일군은 만약 저항이 계속된다면 Rotterdam과 Utrecht를 폭격으로 쓸어버리겠다고 경고한 다음, 그들의 위력을 과시하고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 Rotterdam의 상업지역을 맹폭하였다.

마침내 14일 오후 네덜란드군은 항복하고 말았다.

..

한편 벨기에로 침공한 Reichenau 장군의 제6군 역시 허다한 수중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낙하산부대의 요충지 선점에 힘입어 진격울 취할 수 있었다. 특히 11일에 실시된 가장 극적인 작전은 당시 단일지역으로서 세계최강이라고 평가되었던 Eben Emael요새에 대한 공정작적니이었다. 약 80명의 독일군 공정부대원들이 이 요새에 기습 낙하하여 당황한 1,200여 명의 수비대를 항복시켰던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강력한 Albert 운하선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벨기에군은 dyle선으로 철수하여 그곳에서 영국-프랑스군과 합세하였다. 독일군은 불과 3일 내에 연합군을 Dyle선까지 격퇴시켰으며 16일 아침까지에는 Namur 북방 돌파에 성공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제6군의 공격이 워낙 맹렬했기 때문에 연합군은 독일군의 주공이 애당초 예상했던 대로 북쪽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주공을 담당한 A집단군은 Cleist 장군의 기갑집단을 선두로 하여 Ardenne 지역을 신속히 진격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선두를 담당한 구데리안 장구의 기갑 군단은 프랑스군 기병대의 저항을 물리치면서 5월 13일 Meise강에 도달하였으며, Sedan 부근에서 즉시 도하를 감행하였다. 프랑스군은 독일군이 비록 Meise강에 도착하였다고 할지라도 후속부대의 도착과 도하준비를 위하여 최소한 5 ~ 6일은 걸릴 것으로 판단하고, 그 동안에 충분히 방어진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데리안 장군은 급강하폭격기와 전차 및 자주포의 지원하에 적 앞에서 부교를 가설하고 야간을 틈타 도하를 강행함으로써 14일 새벽까지 전 군단이 도하를 완료하였던 것이다.

한편 이보다 북쪽에서는 또 하나의 기갑군단인 Reinhardt 장군의 부대가 Montherme와 Mezieres 부근에서 하루 늦은 15일에 Meise강을 도하하였다. 그러나 Meise강을 최초로 도하한 영광은 이들 2개 기갑군단이 아니라 제4군에 속해 있었던 Rommel 장군의 제7기갑사단이 차지했다. Rommel의 부대는 이미 13일 저녁 무렵에 Dinant 부근에서 도하에 성공했던 것이다.

여하튼 A집단군은 프랑스 제2군과 제9군 사이에 약 50마일 넓이의 간격을 형성함으로써 돌파에 성공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연합군의 D계획은 완전히 뒤집혀지고 말았다.

..

일단 Meise강을 도하한 후 해안으로 향한 독일군 기갑부대의 진격을 참으로 경탄할 만한 것이었다. 독일군은 18일에 Sedan으로부터 해안까지의 중간지점인 St. Quentin을 통과하여 Somme강에 연한 Peronne에 도달하였으며, 이틀날에는 Amiens을 점령하였다. 20일에는 Abbeville이 함락되고, 21일에는 Boulogne가 독일군 공격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영국원정군의 병참선은 차단되었으며 프랑스도 역시 남북으로 동강나고 말았다. 룩셈부르크의 동쪽 국경을 출발하여 해안에 도달하기까지의 11일간에 걸친 진격작전에서 독일군은 총 240마일 이상을 진격한 셈으로서, 이것은 하나의 군사작전이라기 보다 드라이브와 같은 양상이었다.

한편 19일 저녁에 가물렝 장군(프랑스) 후임으로 임명된 Weygand 장군은 즉시 북방군과 연결을 이루기 위한 계획에 착수하였다. 그는 이 방법만이 연합군을 절망의 구렁텅이로부터 구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Flanders 지역에 있는 영국군과 프랑스 제1군은 너무도 가혹한 격전을 치렀기 때문에 반격을 취해 남쪽으로 빠져 나올 여력이 없었으며, Somme강 남쪽의 프랑스군 역시 23일 이후 독일군에 의해 북진이 저지 당해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Gort 경은 영국 육군성의 지시에 따라 영국군을 해안 쪽으로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태는 Weygand 장군으로 하여금 그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동안 독일군은 깔레와 북쪽의 Ostend 마저 점령하여 북부전선 연합군의 퇴로는 이제  Dunkerque만이 남게 되었다. 그런데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으나, 그 동안 악전고투 하면서 사력을 다해 버텨왔던 레오폴드 국왕 휘하의 벨기에군이 28일에 항복하고 만 것이다. 벨기에군의 항복으로 말미암아 영국군과 프랑스 제1군의 좌익인 Yser강 방면이 붕괴되었으며, 마침내 영국군-프랑스군은 Dunkerque에 고립되어 풍ㄹ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Gort경은 영국정부로부터 이제 그가 당면한 유일한 과제는 가능한 한 최대의 휘화 병력을 영국본토로 철수시키는 일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리하여 연합군은 Dunkerque로부터 병력을 철수시키기 위하여 “다이나모작전(Operation Dynamo)”을 펴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로서 이 작전의 성공 여부는 극히 절망적이었다. 왜냐하면 철수부대들이 Dunkerque 지역으로 속속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별다른 엄호물이나 은폐시설마저 없는 좁은 해안지대에 수십만의 병력이 밀집하게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극도의 공포와 혼란을 불러일으켜 효과적인 작전수행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독일 공군에 의한 맹렬한 폭격과 더불어 포위망은 시시각각 좁혀 들어와 그 안의 연합군은 어망에 갇힌 물고기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무렵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망을 막 건져 올리기 직전의 순간에 Hitler는 전 군데의 이동을 중지시킨 것이다. 즉 5월 24일 전 지상군의 진격을 중지시키는 Hitler의 불가사의한 명령이 돌연하달되었고, 이로부터 3일간 독일군은 Dunkerque 전방 10마일 지점에서 머물러 있게 되었던 것이다.

히틀러가 독일군의 진격을 중지시킨 이유 설명….(생략)…

Dunkerque 지역에서 5월 289일부터 6월 4일까지 8일간에 걸친 철수작전에서 영국군 224,000명, 프랑스군 및 벨기에군 113,641명 등 총 338,226명의 병력이 구출되었다. 그러나 연합군은 모든 중장비와 보급품을 대륙에 방치한 채 몸만 빠져나갔기 때문에 영국본토는 무방비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

Dunkerque가 함락된 당일인 6우러 5일 독익군은 제2단계작전을 개시했다. 이 공격은 제1단계 작전에 의해 병력의 거의 절반을 상실한 프랑스를 쓰러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에당초 강력한 Maginot line 요새선 배후에서의 방어작전을 기대했던 프랑스군은 이제 Maginot line의 좌단으로부터 영국해협에 이르는 광대한 무방비지역에서 야지전투를 강요당하게 되었다.

조공부대인 Bock 장군의 B집단군이 Somme하구와 Amiens 부근에서 구데리안의 기갑부대를 선두로 공세를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2일에는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고 돌파에 성공함으로써 이후 대추격전을 감해하기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6월 10일 이탈리아가 대 프랑스선전포고와 동시에 남프랑스 국경지대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프랑스군은 와넞ㄴ히 지리멸령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6월 14일 파리가 무혈점령되었고, 15일이 되자 독일군이 프랑스 전역을 석권할 것이 명백하게 되었다. 이에 Reynaud 수상은 Bordeaux에 피난해 있던 정부를 북아프리카로 철수시켜 전쟁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6일 처칠은 이를 뒷받침이나 하듯 열국-프랑스 양국의 “결속(Indissoluble Union)”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내각의 대부분은 뻬땡의 주창 하에 독일에 대하여 휴전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이러는 동안 구데리안군은 6월 17일에 스위스 국경에 도달하여 프랑스군을 동서로 양분하고 Maginot line 요새 안에 500,000명에 달하는 프랑스군을 가두고 말았다. 또한 제1단계 작전기간 중 마지노 요새 정면에서 견제공격을 취하고 있었던 Leeb의 C집단군도 전면 공격을 개시하여 14일에는 Saarbrucken에서, 16일에는 Colmar에서 Maginot line을 돌파하였다. 마침내 Reynaud의 사퇴에 뒤이어 수상이 된 뻬땡은 21일에 Huntziger장군을 수석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하여 독일군과 협상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휴전 조약은 22일에 조인되었고, 25일 0시 35분을 기하여 모든 전투행위가 종식되었다. 46일간에 걸친 전투에서 독일군은 전사 27,000명, 실종 18,000명을 포함하여 총 156,000명의 병력손실을 입었으며, 영국은 68,000명, 프랑스는 전사 및 실종이 123,000명, 포로 20만의 손실을 당했다.

..

..

..

Written by MayBeMayBe

September 16, 2012 at 23:34

Posted in I'v ever read, Reading

Tagged with ,

세계전쟁사 – 1, 2차 세계대전……

leave a comment »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맺어진 베르사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이 있고 많은 감시가 있었을 텐데, 어떻게 독일이 그렇게 강하게 재무장할 수 있었을까…

재무장보다는 너무나도 차이가 나게 벌어진 군사력 그 차이……

프랑스나 영국등은 분명히 그 위험성을 계속 알고 있었을테고 준비도 하였을 텐데……

 

..

1, 2차 세계대전을 읽으면서 항상 드는 의문이다. 접하는 모든 책에서도 그것에 대해 설명은 하지만 그리 쉽게 다가서는 설명은 아니다..

..

1차 세계전이 끝나고 약 20년 후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는데 20년…이라는 시간은 새로운 이들이 태어나고 바로 징집할 수 있는 나이대다….

히틀러(Hitler)에 의한 영향도 있었겠지만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서 성인이 되는 시기…

..

2차 세계대전은 이 책 말고도 Russia’s War –  A history of the soviet effort 1941 ~ 1945(“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으로 번역 – Richard J. Overly)라는 책에서 어떻게 러시아와 독일군이 싸우고 전쟁이 진행되었는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레닌그라드 전쟁이나 모스크바 포위전, 스탈린그라드 전쟁 등도 있지만 독일군 전차와 러시아 군 전차가 대규모로 맞붙은 Krusk 전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Russia’s War: A History of the Soviet Effort: 1941–1945, Overy, Richard –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https://maparam.wordpress.com/2011/08/20/russias-war-a-history-of-the-soviet-effort-1941%E2%80%931945-overy-richard-%EC%8A%A4%ED%83%88%EB%A6%B0%EA%B3%BC-%ED%9E%88%ED%8B%80%EB%9F%AC%EC%9D%98-%EC%A0%84%EC%9F%81/

 

원서로 된 책 제목과 번역하여 새로이 붙인 제목은 맘에 들지 않지만….

..

 

..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르사유 조약에서 러시아와 독일 사이에 넓게 둔 그 완충지역(나라들)을 이해 못하는 어떤 이가 있었다. 군사적 완충지역….의 필요성….

다른 말로 하면, 남한과 북한이 통일을 하게 된다면 주한미군이 북한에도 주둔할 수 있고…. 그러면 주한미군이 북쪽으로도 올라갈 수 있는데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좋아할리 없다……. 그런 설명…

중국, 러시아에서 북한을 바라 보는 입장도 그러한 측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북한은 하나의 그 군사적 완충지대가 될 수 밖에 없다 뭐 그런 내용…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러시아나 프랑스, 영국 등이 그 완충지역을 만들 때 그 곳의 자주권, 민족권을 중요하게 여겨서 새로운 나라를 만든 것은 분명히 아니다….

자기들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지….

..

..

 

여하튼….,,

 

..

 

 

================================================

 

세계전쟁사 – 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

1, 2차 세계대전..

 

..

후티어 전술(hutier tactics)

http://en.wikipedia.org/wiki/Hutier_tactics

후티어 전술은 첫째 기습을 그 기조로 하고 있다. 기습은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의 대공세에서와 같은 수일간에 걸친 포격 대신에 단기간의 강렬한 준비포격으로 이를 대신하며, 경우에 따라 최후의 순간이나 야간에 공격함으로써 성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 공격하는 보병부대의 바로 앞에 계속적으로 탄막을 형성하고, 보병은 전방으로 이동하는 탄막의 바로 뒤에서 전진하며 이 탄막은 보병의 전진 정도에 따라 거리를 증가시킨다. 그리고 보병을 따라 전진하면서 직접 지원한다는 것이다.

셋째, 경기관총을 주무기로 하는 소규모의 보병전투단은 취약지점에 침투하며, 견고한 진지는 우회하고 후에 지원부대가 이를 소탕한다는 것이다.

 

이런 후티어 전술은 과거에 없었고, 강렬한 인상을 연합군과 독일군에게 주었다는 설명이 있다. 그리고 이 후티어 전술이 나중에 2차 세계대전에서 전격전과 같이 쓰였다는 설명도 있고………

 

1918년 3월과 7월사이에 독일군이 연합군 서부 전선에 대하여 루덴도르프 공세(Ludendorff Offensive)를 취하는데 위에서 설명한 Hutier tatics를 사용하여 교착된 적 진지를 돌파하는데 큰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

 

..

Ludendorff Offensive

http://en.wikipedia.org/wiki/Ludendorff_Offensive

..

..

사진 : 위키피디아….

Ludendorff Offensive(루덴도르포 공세, 1차 세계대전)

..

 

Ludendorff는 미군의 대병력이 전선에 투입되기 전에 기선을 제압하기 위하여 공격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탄약과 군수품의 수송, 포대의 구축, 연락망의 설치, 공격부대의 정비 등 공격준비를 완료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기인 3월을 공객개시기로 결정하였다. 공격 지역은 Verdun, Flanders, Somme 지역 중에서 Somme을 선택하여다. Somme 지역은 돌파에 성공하면 영국-프랑스 양군을 분리시킬 수 있으며 영국군을 해안으로 압박하여 궤멸시킬 수 있을 것이며, 또 이지역의 방어가 가장 소홀하였기 때문이다.

Ludendorff의 작전 계획은 대단히 단순하였다. 3개 군이 동시에 Arras 동남부에서부터 La Fere 바로 북방까지의 영국군 전선을 돌파하여 진격하려는 것이었다.

영국 군사령관 헤이그 원수는 3월 말경 독일군의 대공세가 있을 것을 예측하였고, 그 공격 지역도 짐작하였다. 그러나 독일군이 그렇게 많은 병력과 그렇게 강렬한 방법으로 공격해 오리라는 것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였다.

독일군의 공격은 3월 21일 새벽 4시 40분, 6,000문의 포와 3,000문의 박격포가 일제히 포구를 열어 1시간 방 동안 가스와 연막과 고성능 폭약으로 영국군 진지를 분쇄하고, 60개 사단이 짙은 안개를 뚫고 진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공격은 처음부터 빛나는 성공을 거두어 공격개시 후 하루만인 22일에 벌써 돌파에 성공하여 1914년 이후 처음으로 교착상태를 벗어나게 되었다. 프랑스군으로부터 새로 인계받은 Gough 장군의 제5군 정면에 대한 Hutier 장군의 공격은 특히 성공적으로 수행되어 미처 파괴하지 못한 Somme 강의 교량을 점거하였고, 제3군(Byng)의 노출된 우측면을 공격하여 이를 격퇴시켰다.

Ludendorff 장군은 취약지점 공격의 원리에 따라 Hutier의 전과를 더욱 확대시키이 위하여 주력을 좌익의 돌출부에 투입하였다. 이에 영국군은 행정 및 병참요원 등 모든 가용병력을 총동원하여 돌출부(제3군과 제5군 간의 간격)에 배치하고 Petain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프랑스군은 약간의 예비대를 축차적으로 투입하였으나, Petain의 관심은 이 지역보다 파리(Paris)의 방어에 있었기 때문에 Somme강 남쪽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군간의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자, Foch장군을 연합군사령관에 임명하여 형식적인 연합군의 지휘권 통일…

그 동안 3월 27일에 Hutier 장군은 몽띠르를 장악함으로써 영국과 프랑스군을 절단하는데 성공하였으나 황폐된 Somme 지역에서 병사들은 지쳤고 도로가 파괴되어 포병부대는 보병부대의 진격 속도에 맞추어 진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병참과 포병지원이 부진하였다. 이리하여 시일이 경과할수록 영국군의 방어력이 상대적으로 우세해지고 영국 항공대의 저고도 폭격이 치열해졌으므로, 완전한 승리의 기회를 목전에 두고 이를 포착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끝내 이를 성취하지 못하고 4월 4일에는 전선이 다시 안정되었다.

이 제1차 공세에서 독일군은 약 62km를 전진하였고 70,000명의 포로와 1,100문의 포를 획득하고 200,000명 이상의 손실을 주었다. 그러나 독일군의 손실도 연합군과 비슷하였으며, 더욱이 사상된 독일군 병사는 최정예 병이었다.

그래서 독일군은 전술적으로 성공하여 영국과 프랑스 양군을 절단하였으나, 영국군을 전멸시키려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여 전략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렇게 제1차 공세에서 실패한 후 Ludendorff는 대공세를 한번만 더 취하면 영국군을 구멸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2주일 후에 Somme 공격 시에는 많은 병력을 빼내어 비교적 약화된 Flanders 지방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4월 9일에는 제6군(Quest), 4월 10일에는 제4군(Arnim)을 각각 Hutier 전술로 공격하도록 하여 4월 12일에는 Lys강에 육박하였다. 이날 영국군은 극심한 위기에 봉착하였으나, Haig 장군이 … 이 지역을 사수하였다.

이렇게 되어 4월 12일 이후 독일군의 공격이 점차 약화되다가 4월 17일에는 일단 중지되었으며, 4월 29일에 Ludendorff가 공격 중지를 명령하였다. 이 제 2차 공격 시에 독일군은 영국군에게 또 다시 30만 이상의 손실을 주었으나 영국군에게 치명적인 지점은 한 곳도 점령하지 못하였으며 독일군 자체의 사상자도 35만 명을 헤아렸다.

이와 같이 두 차례에 걸친 공격에서 전술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였으나 전략적으로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Ludendorff 장군은 극도로 피곤해진 영국군을 제압하기 위하여 또 다시 새로운 공세를 결심하였다.

 

 

— 이하생략….–

 

 

 

..

..

제 2차 세계대전…

 

..

전격전(Blitzkrieg)

http://en.wikipedia.org/wiki/Blitzkrieg

..

 

이와 같은 군사이론가들의 사상적 영향은 독일군이 제1차 세계대전의 패인을 분석 연구함에 있어서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즉 돌익은 1918년 Ludendorff 대공세 때에 사용한 Hutier 전술이 돌파에 성공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돌파구 확대나 그 이상의 전과 확대에 번번히 실패한 이유를 면밀히 분석 검토한 결과, 공격부대의 화력, 기동력, 수송력의 부족에 기인하였다는 결론을 얻었다. 왜냐하면 공격부대의 기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 사이에 연합군은 철도나 차량 등을 이용하여 신속히 예비대를 이동시킴으로써 독일보다 우세한 병력을 돌파구 전면에 집결시킬 수 있었으며, 수송력의 부족 때문에 예비대 증원 및 충분한 보급지원이 불가능하게 되어 공격부대의 전투력이 약화되었고, 포병이 신속하게 진격하는 보병부대를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에 후속 지원화력이 결핍됨으로써 전장을 제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독일군은 위와 같은 결점을 보완하는 방법으로서 기동력의 부족은 공격부대를 기계화하고, 수송력의 문제는 대규모의 차량화부대 및 보급지원부대를 편성하여 해결하고, 화력은 전차와 포병의 자주화, 항공기의 폭격으로 보강하게 하였다. 결국 독일군은 Guderian의 전차부대 운용방안이 결실을 맺어 기갑사단(Panzer Division)을 편성하게 되었고, 이에 덧붙여 급강하폭격기(Stuka)와 지상부대간의 협동작전을 연구한 결과, “전차중심의 기계화부대와 전술항공대가 협동된 경이적인 공격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처럼 강력한 공격부대에 의해 전개되는 전격전은 3대 요결로서 기습(surprise), 속도(speed), 화력의 우위(superiority)를 갖추고 있었다.

기습이란 적에게 심리적 충격을 가하여 전의를 상실케 하는 것이며, 이러한 기습효과는 제5열의 활동에 의해서 그 일부가 달성되기도 하고, 선전포고 없는 급작스런 침공으로 얻어지기도 한다. 전략적 기습, 전술적 기습, 기술적 기습의 3가지….

속도는 기계화부대가 적진 깊숙히 침투함으로써 적으로부터 후퇴 또는 재편성의 여유를 박탈하는 것을 뜻하는데, 한편으로는 기습효과를 보장해주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적진 깊숙한 곳에서 벌어진 혼란을 틈타 진격부대로 하여금 막대한 안전의 이점을 누리게도 해준다.

화력의 우위란 전차포, 자누포, 급강하폭격기 등에 의한 압도적 지원화력의 우세를 의미한다.

위와 같은 3대 요결을 갖춘 전격전은 한마디로 “적을 섬멸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마비시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격전의 수행과정은…

1. 적의 후방에서 오열활동을 전개하여 정보를 수집하여, 민심을 교란하여 적 국민의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약화시킨다.

2. 공군은 기습적 일격으로 적의 공군력을 분쇄함으로써 제공권을 장악하고, 아울러 적 후방의 도시, 부대집결지, 지휘소, 그리고 통신시설 및 교통시설 등을 폭격하여 지위조직과 예비력 동원체제를 마비시키고 동시에 심리적 충격을 가한다.

3. 한편 전차, 자주포, 차량화된 보병, 공병 및 병참지원부대가 하나의 팀을 이루어 적의 방어가 약한 전선의 좁은 정면에 대해 기습적으로 집중 공격함으로써 돌파구를 형성한다. 이때 돌파를 담당하는 것은 보병이며, 따라서 돌파부대의 최첨단에는 보병이 위치하게 마련이다.

4. 기갑부대가 이 돌파구로 신속하고도 깊숙히 침투하여 적의 주력을 차단, 포위함으로써 적으로 하여금 재편성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이때 포병지원이 신속히 전진하는 기갑부대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에는 급강하폭격기가 화력증원을 담당한다.

5. 포병의 지원을 받는 보병이 기갑부대에 접속 전진하여 차단, 포위된 적을 소탕한다.

 

 

 

..

 

..

인정하지 않는 학자들도 있다고 하지만, 전격전(Blitzkrieg)을 처음 사용하고 보완한 것이 폴란드 전역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완성된 형태로 자주 보게 되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서부전선과 아프리카, 동부전선이겠지만…..

 

..

 

..

폴란드 전역(Invasion of Poland)

1939.09.01 ~ 1939.09.28

http://en.wikipedia.org/wiki/Invasion_of_Poland

Invasion of Poland

..

Map showing the advance made by the Germans, and the disposition of all troops on 14 September

..

폴란드 전역을 보면 그 전쟁 기간을 유심히 보면 …..

..

 

..

================================================

 

 

 

 

 

 

 

 

 

 

 

 

 

Written by MayBeMayBe

September 15, 2012 at 22:26

Posted in I'v ever read, Reading

Tagged with ,

세계전쟁사 – 1차 세계대전….

with 3 comments

 

 

 

세계전쟁사

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

..

1차 세계대전

 

 

..

1 mile = 1.6 Kilometer…

 

..

전쟁사를 읽을 때는 자세히 설명된 지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슨 짓을 했는지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이해가 된다.

글로만 설명하는 것을 따라가면, 대부분은 글일 뿐이다..

..

지도를 보면서 또한 필요한 것은 상대적인 거리…

..

왜 저곳에서는 mile, Pound 같은 단위를 쓰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근”이나 “평”이니 “리”같은 단위를 쓰라는 것은 아니지만….

kilo meter, kg, meter*meter, meter*meter*meter 같은 단위를 쓰면 얼마나 좋아….

..

예전에 어떤 우주선이 폭발하였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이런 단위 차이때문에 발생하였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

..

어제, 그제 책에 나오지 않은 전쟁 지도가 없을까 인터넷을 뒤적였는데 못 찾고… 넘어 갈려고 했는데, 우연히 검색이 되었다. 으례히 wikipedia 위주로 검색을 하였고 거기 나온 링크 위주로만 찾았었는데,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

http://www.firstworldwar.com

..

지도가 엄청 많다…

책에는 중요한 전투만 실었는데 반하여…

..

..

..

Schlieffen Plan

http://en.wikipedia.org/wiki/Schlieffen_Plan

..

Schlieffen Plan

Schlieffen Plan – Wikipedia

..

Shilleffen plan은 원래 프랑스, 영국, 러시아 연합과 독일이 전쟁하게 되었을 때를 고려하여 1차 세계대전이 일어 나기 훨씬 전에 독일 합동 참모본부에서 잡은 전쟁 계획이라고 책에 나와있다.

빨강 화살표가 독일이고 파랑 화살표가 프랑스 침공 계획인데….

나중에 이러한 작전 계획을 변경하고 프랑스가 원하는 방향으로 공격을 했다가 실수를 알아차렸다고……

..

빨강 화살표를 보면 프랑스가 독일측으로 전진하는 동안 지도 중앙 쪽에서 프랑스 전진을 지연시키고, 옆으로 옆으로 우회 기동하며 프랑스 전체를 포위하는 작전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이러한 계획에서는, 독일은 주력을 당연히 옆으로 우회하며 포위하는 곳에 두워야 하는데, 나중에 이러한 계획을 수정하면서 중앙 쪽을 강화해 버렸다고…

전쟁이 터지고 실수를 파악하고 다시 위 계획대로 할려고는 했으나 ……

 

 

..

http://www.firstworldwar.com/maps/graphics/maps_02_warplans_(1600).jpg

..

 

 

..

Western Front battle field maps….

http://www.firstworldwar.com/maps/westernfront.htm

..

Situation at 20 August 1914

http://www.firstworldwar.com/maps/graphics/maps_04_belgium1914_(1600).jpg

..

Situation at 9 September 1914

http://www.firstworldwar.com/maps/graphics/maps_11_marne1914_5_(1600).jpg

..

First world war - Marne battle maps..

First world war – Marne battle maps..

위에 보면 Paris가 왼쪽 아래에 있다…

파리가 코 앞에 있다 그런 표현이 어울릴 듯…

..

뭐, 나머지 전투에 대한 지도도 www.firstworldwar.com에 많이 있으니 서부전선은 되었고..

..

 

 

 

 

 

..

“세계전쟁사” 책에서 그림으로 자세히 설명한, 완벽한 포위 섬멸전을 보였던 1차 세계대전 동부전선…

독일과 러시아의 싸움…..

..

First world war – Eastern front battle maps..

http://www.firstworldwar.com/maps/easternfront.htm

..

First world war - Eastern front

First world war – Eastern front

Eastern front in 1914… – Prebattle dispositions..

왼쪽이 독일, 오른 쪽이 러시아…..

..

..

Battle of Tannenberg

..

..

Battle of Tannenberg

러시아 군의 이동상황이 뚜렷이 보인다.

..

Battle of Tannenberg in 1914

Battle of Tannenberg in 1914

..

Battle of Tannenberg

Battle of Tannenberg

..

Battle of Tannenberg

..

포위 완성……………………

..

..

..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Tannenberg

..

File:Tannenberg3008.jpg

Wiki – Tannngerg battle

Wikipedia 그림은 위에 있는 지도와 다르게 고도, 높이 정보까지 표시 되어 있다.

 

 

..

..

 

 

탄넨베르크 전투

동부전선에서는 현대판 칸나에(밑에 링크 추가) 전투라 말할 수 있는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독일군은 러시아군 4개 반 이상의 군단을 거의 전멸시키는 경이적인 대승리를 거두었다.

레넨캄프(Rennenkampf)의 제 1군은 Insterburg에 진출하여 독일 제8군을 동북방에서 견제하여 이를 전선에 고착시키고, Alexander Samsonov의 제 2군은 남방으로 우회하여 북상함으로써 그 병참선을 차단하고 배후로부터 공격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당시 독일 제8군사령관 Prittwitz는 Schlieffen 계획에 따라 러시아군의 진격을 저지, 지연시킬 임무를 부여받고 있었다.

개전 초, 러시아군은 의외로 신속히 동원하여 동부러시아 방향으로 진격해왔다.

이에 Moltke는 Prittwitz 해임을 결심하고, 그 후임으로 … Hindenburg를 임명하고, 그를 보좌할 참모장으로 … Ludendorff를 선임하였다.

… 우선, Samsonov 군을 격파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작전계획을 수립하였다.

1. 제1군단과 제3예비사단을 Rennenkampf군의 전면에서 차출하여 철도운송으로 제20군단의 우익을 보강하며,

2. 이 동안 제20군단은 Samsonov군과의 접촉을 피하고,

3. 제17군단과 제1예비군단은 서방으로 행군할 것이며,

4. Rennenkampf의 즉각적인 추격이 없을 경우 남방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5. 그리고, 제1기병사단만이 단독으로 러시아 제1군단과 대치하여 그 진격을 저지한다.

는 것이었다.

한편 Rennenkampf는 20일 밤에 독일군이 Gumbinnen에서 철수한 것을 알고 승리에 도취하여 그곳에 주저않자 거의 3일을 허송하였다. 그리하여 독일군의 기동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 “독일군이 Vistula선의 방어를 위하여 황급히 철수하고 있거나 Konigsberg 요새 안의 안전지대로 도피하고 있으리라”고 추측하여 사실인 것처럼 보고하였다.

이리하여 8월 23일 Soldau와 Ortelsburg 사이의 호반지역에서 국경을 엄은 Samsonov 군은, 적과 접촉이 임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선에 대한 정찰을 하지 않은 채 퇴각하는 적의 후방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막연한 전진을 계속하였다.

8월 25일에는 Zielun의 기별진지로부터 Bischofsburg를 연결하는 약 144km의 넓은 정면 전선에 분산, 전개되었으며 양 측면에는 각각 고립된 1개 군단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군의 치명적인 약점은 암호전신과 암호번역에 익숙치 못하여 모든 연락을 평문 전신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독일군은 러시아의 무전을 세밀히 청취하여 힘들이지 않고 러시아군의 상황과 기도를 파악하였다.

26일 새벽에 Samsonov는 Osterode-Allenstein선을 향하여 진격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동안 Rennenkampf군은 서방으로 극히 완만한 속도로 전진하여 25일에서야 Samsonov군의 우익으로부터 약 64km나 떨어진 Allenburg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26일 일몰까지도 Allenburg 이북으로는 진출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이러한 상황과 계획은 물론 독일 측에 상세히 알리어졌다.

이렇게 되어 이들 Samsonov와 Rennenkampf는 서로 지원할 수 있는 거리 밖에 떨어져 있으면서, 협동작전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들의 위치와 계획을 독일군에게 폭로함으로써 Hinburg와 Ludendorff가 현대판 한니발이 되도록 … 운명을 자초하였다.

독일군의 원래 계획은 Samsonov군의 왼쪽면만 공격하려는 것이었으나 Rennenkampf군의 교착과 Samsonov군의 위치는 Hindenburg와 Ludendorff로 하여금 전사상 가장 대담한 결심을 하도록 하였다. 즉 Rennenkampf의 전면에 제1기병사단만을 남겨놓고 제17군단과 제1예비군단을 전용하여 Samsonov군의 좌, 우 양 측면을 포위 공격하게 한 것이다. 이리하여 8월 24일 밤 남쪽으로 전향하여 강행군을 시작한 제17군단과 제1예비군단은 8월 26일에 Samsonov군의 우익 제6군단을 기습 격파하여 이들을 전선으로부터 32km나 떨어진 Ortelsburg의 동남부로 퇴각시키고, Samsonov군 주력의 오른쪽과 배후의 통로를 개방하였다.

한편 제20군단의 우측에서 전투준비를 완료한 François의 제1군단은 8월 26일 Soldau 부근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Samsonov군의 좌익 제 1군단을 남방으로 퇴각시켜 Samsonov군 주력의 왼쪽면을 폭로(노출)시켰다. 이리하여 Samsonov군의 주력 제15, 13군단은 좌, 우 양측면과 배후가 노출되어 포위될 위험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던 Samsonov는 28일 그의 중앙군(제15군단, 제13군단)에게 독일 제 20군단을 공격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날은 지금까지 수세를 취해오던 제20군단도 좌우양익의 포위부대에 보조를 맞추어 총반격을 시작하였다.

러시아군은 28일에 줄곧 후퇴하였으며 29일에는 부대와 마차, 마필이 뒤섞이어 울창한 삼림을 통하여 후퇴하는 동안 단위부대조차 구별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날 밤 선제권을 장악한 François 장군은 동방으로 계속 진격하여 Willenburg까지 진격하여 퇴각하는 러시아주력군의 남쪽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였다. 그리고 독일 3개 군단은 동서북의 세 방면에서 포위망을 축소하여 현대판 칸나에 전투를 성취하였다.

29일 늦게야 휘하 부대의 비참한 상황을 알게 된 Samsonov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파멸을 더 볼 수 없어 자살하고 말았다. Tannenburg 전투 중 러시아군의 손실은 포로 90,000명을 포함한 병력 125,000명과 포 500문이었다. 이에 반해 독일군은 10,000 ~ 15,000명의 경미한 손실을 입었을 뿐이다.

Samsonov군을 격파한 독일군은 이제 그들의 눈을 Rennencampf군에게 돌렸다. Moltke가 서부전선에서 보내준 2개 군단과 1개 기병사단으로 증강된 제8군은 4개 군단으로써 마주리아호 북방에서 Rennencampf군을 견제 공격하고, 2개 군단을 소택지의 남방과 그 중간지대에서 포위 공력하게 함으로써 Rennencampf군을 기습하여 다시 120,000명 이상의 손실을 주어 패퇴시켰다.

이 연속 된 패배로 러시아군은 동부전선에서 완전히 주도권을 상실하고 이 피해를 회복하지 못한 채 결국에는 전선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

..

..

..

============================================================

Battle of Cannae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Cannae

..

Battle of Cannae, 215 BC - Initial Roman attack

Battle of Cannae, 215 BC – Initial Roman attack

..

Battle cannae destruction

Battle cannae destruction

..

..

 

 

Written by MayBeMayBe

September 10, 2012 at 20:41

Posted in I'v ever read, Reading

Tagged with ,

세계전쟁사 – 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

leave a comment »

 

 

육군사관학교에서 2004년도에 다시 개정하여 내 논 책이다..

예전에도 읽었던 적이 있는데, 분명 이번은 느낌이 다르다..

비록 첫 시작만 읽었지만…..

..

기록을 찾아보면, 2004년 10월에 처음 샀었나보다…

..

====================================================

아래 아래 아래는, 책 시작 부분에 나오는 용어 설명 부분 들…을 부분으로 베낀 것….

대충 몇개 단어를 위키피디아에서도 찾아 보기는 했는데 설명이 그리 좋지는 않다. 물론 밑에 있는 설명도 딱히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 또한 많다..

영어로 설명된 부분은 그래도 분량이 많기는 한데, 언제나 그렇듯 해석 부분이 남아 있다…

..

내가 군사 쪽으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전쟁사 부분을 읽고 기억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이다.

..

고대(근대이전) 전쟁사 부분을 설명한 것을 보면 다  몽고가 세계를 침략했던 몽고를 제외한 서구권이다….

진시황 이전, 직후나 그 후 초와 한이 벌인 쟁탈전….., 수, 당, 명, 청 등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서도 충분히 살펴볼만한 전쟁사와 후에 다시 살펴볼 예들도 많을텐데, 왜 없는 것일까…

..

책 제목은 아무래도 “세계전쟁사” 보다는 “서구전쟁사”가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몽고를 제외한다면….

보통, 2차 세계대전까지만 주로 읽고 그 후에 벌어진 전쟁은 흥미가 많이 떨어지는데 이번에 시도하는 것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

..

전쟁사든 그냥 역사든, 아직까지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사기 – 열전”에 들어 있는 회음후 한신 편……….

시오노나나미가 쓴 “로마인이야기”를 통해 본 한니발과 카이사르도 인상적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회음후 한신’에는 미치지 않는다…

나관중이 지었다는 “삼국지(연의)”도 물론 재미있지만 이야기[소설]로 다시 쓴 부분도 많다고 하므로 제외한 것이고…..

 

..

그나마 전쟁, 전략, 전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육군사관학교에서 내 논 책이라 고른 것이기는 한데… 괜찮다…

글이 좀 딱딱하고 표현이 예전 문체[고전체]라서 그렇지….

그래도 전쟁터 지도와 서로간에 펼쳐진 진형, 중대든 대대 병력이든, 사단 병력이든, 군단 병력이든 군이 어떻게 배치되었고 어떻게 배치가 흘러갔는지 좀더 세세하게 그림으로 나타내었다면, 그리고 더 선명한 그림이 사용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

비록 일반인이 대상인 책은 아니더라도…말이지.

 

..

이번에도 나폴레옹 전쟁을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될까, 아니면 2차 세계대전일까…

또 아니면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전과 그리고 책에 나오지 않은 전쟁 부분을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될까…

..

 

 

 

===========================================

 

..

전면전쟁(General war), 국지전쟁(Local war)

총력전쟁(Total war), 제한전쟁(Limited war)

핵전쟁(Nuclear war), 재래식전쟁(Conventional war)

전술(tactics) – 한 전장에서 지형과 전투력을 활용하여 적을 패배로 몰아 넣는 기술.
전략(Strategy) – 일련의 전투를 구상하고 전투력을 배분 혹은 집중하여 추가적인 전투력을 투입함으로써 일련의 전투와 이에 부수하는 행동의 결과를 활용하여 종국적인 전쟁 승리로 이끄는 기술.

전투(Battle)
교전(Engagement)
전역(Campaign) – 비교적 독립적인 지역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서로 연관을 맺고 이루어지는 일련의 전투 들.
전략은 전역 혹은 전쟁 자체가 대상이며 하나의 전역 혹은 여러 개의 전역에서 전투를 사용하여 궁극적인 전쟁 승리를 이루어내는 것….

대전략(Grand stragegy)
국가전략(National strategy)
군사전략(Military strategy)
전구(Theater of war)
작전술(Operational art)
……………….
작전선(병참선, Line of operation) – 군대가 기지에서 출발하여 진격해 가는 통로와 방향..
전략적 측면(Strategic flank)이란 만약 적이 이 측면을 우회하면 아군의 병참선이 위협을 느끼게 하는 측면으로 보통 이 측면은 병참선에 가까운 측면이다. 전술적 측면(Tactical flank)은 공격군이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측면을 말하며, 이 측면은 보통 쉽게 포위 및 우회할 수 있다.

내선작전(Operations on interior lines), 외선작전(Operations on exterior lines)
내선작전이 가지는 이점은 각 지점간의 거리가 가까워 병참선이 짧고 통신이 용이하다, 그리고 유리한 조건하에서 내선작전을 하는 군대는 자기의 병참선에 위협을 받는 일이 없이 그 병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적의 정면에 투입할 수 있다.

역공세(Counter-Offensive), 반격(Counter-attack)

협동공격(Coordinated attack), 축차공격(Piecemeal attack)
협동공격은 휘하의 모든 단위부대가 최대한으로 단합된 힘을 발휘하기 위하여 연합적이며 조직적인 행동을 함을 말하고, 축차공격은 병력을 조금씩 증가시켜 투입하는 공격법이다. 축차공격은 일반적으로 병력의 분산을 초래하게 하며, 또 집중의 원칙을 위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주공(main attack), 조공(secondary attack)
견제공격(holding attack), 조공은 적 병력을 고정시키며, 결정적 지점이 아닌 곳에 적의 예비대를 투입하도록 강요하여 주공 정면에 병력증가를 저지함으로써 주공을 돕는 임무…

정면공격(frontal attack)은 기동의 원칙, 병력절약의 원칙 및 집중의 원칙을 범하는 것이며, 적의 정면에 균등하게 병력배치를 하는 경우 성공의 기회가 가장 적다. 적의 정면을 회피하는 공격방법을 포위기동(enveloping maneuver)라고 하며, 이것은 다시 포위(envelopment), 양익포위(double envelopment), 우회(turning movement)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보통이다.

포위할 때 주공은 적 주력군의 측면이나 배후에 둔다. 포위는 집중된 적을 2개 방향 또는 그 이상의 방향으로 병력을 분산하도록 강요하며, 또 우군이 선정한 지점에서 전투하도록 강요한다. 이런 공격은 손실을 감소시키며, 방어자로 하여금 불시의 공격에 응전하는 능력을 감소케 하여, 이것이 성공하면 결정적 성과를 획득할 수 있다. 포위의 성공도는 주로 기습의 성공도와 적의 주력 정면을 견제하는 조공의 효과에 의존한다. 또 기동성의 우세는 성공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양익포위는 적의 양 측면에 대하여 포위하는 것으로, 일익포위(single envelopment)에서와 마찬가지로 적 정면에 대한 조공은 적이 반격방법을 강구하지 못하도록 가능한 최대의 적 병력을 흡수하고 견제한다. 포위의 한 가지 형태인 다중포위는 포위망이 여러 겹의 포휘환으로 이루어질 경우를 말한다.
우회는 적 배후의 있는 치명적인 지점을 강타할 목적으로 적 주력의 측면을 통과하는 포위 기동을 말한다. 포위는 공격 정면에 있는 적을 즉각적으로 파괴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반면에 우회는 적 전투력을 지원하는 중요한 병참선을 위협함을 목적으로 한다. 포위에 있어서 주공과 조공 부대는 상호 지원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지만 우회에 있어서는 양 부대가 대게 상호 지원 거리 밖에서 독립된 작전을 한다.

돌파(breakthrough, penetration) – 장애물 또는 기타 이유로 적 측면에 대하여 포위기동을 실시하기 불가능한 경우에는 공격자는 적 주력 정면의 일부분에 대하여 전투력을 집중하여 전선을 파괴하고 여기를 통과하여 적 배부에 있는 목표를 장악하는 것. 일단 돌파가 이루어지면 돌파구는 확대되어야 하고, 강력한 예비대가 투입되어 약화된 적을 각개 격파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침투기동(infiltration)은 비교적 소규모로 구성된 부대가 적 후방의 사령부, 주요 무기체계, 군수시설, 통신망 등을 타격하고 교란할 목적으로 육상, 해상, 공중으로 은밀히 적 후방에 잠입해 들어가는 기동형태.

선방어(cordon defense) – 수세의 경우, 위험이 예상되는 전 정면에 병력을 분산하여 배치하면 종심이 얕아지고, 예비대의 부족을 가져오게 된다. 이런 선방어는 신축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돌파와 포위에 대하여 취약하다.
기동방어(mobile defense), 종심방어(defense in depth) – 방어 측은 일선의 대형을 피하고 전 방어지역에 대하여 상호 지원할 수 있는 진지를 구축하며, 이 진지는 종심 깊게 불규칙적으로 배치된다. 기동방어가 성공하기 위한 기본적 요건은 강력한 예비대(reserve)가 있어야 한다. 이 예비대는 방어 지역 종심상에 전술적으로 중앙에 위치하여 전투 지역에 대하여 돌파해 오는 적에 대해 반격을 가할 수 있다.

전초기지(outpost)
습격(raid), 양동(feint), 제한공격(limited attack

후퇴(retrograde movement) – 철수(withdrawal), 철퇴(retirement), 지연작전(delaying action)
철수는 적과의 접촉으로부터 이탈하는 작전을 말하고, 그 목적은 행동의 자유를 회복하거나 유지하는데 있다.
철퇴는 적의 주력군과 접촉하기 전에 적으로부터 이탈함으로써 결전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퇴각..
지연작전은 결정적인 전투를 하지 않고 시간을 획득함과 동시에 적에게 최대한의 손실을 가하는 것이 기본원칙이기는 하지만 이 작전에 적용되는 전술은 근본적으로 수세적인 것이다.

 

 

 

 

 

 

 

 

 

 

Written by MayBeMayBe

September 6, 2012 at 00:57

Posted in I'v ever read

Tagged wi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