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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peninsula crisis in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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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 코리아 2017.04.12 – 미국이 1994년에 북한을 폭격하려 했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7/04/12/-_n_15957300.html

 

미국의 북폭 계획 저지
6월 16일 오전 안보수석으로부터 내게 이런 보고가 올라왔다… 그 내용인즉 ‘회견 직후 주한미군 가족과 민간인 및 대사관 가족을 서울에서 철수시킨다’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미군가족이나 대사관 직원들을 철수하는 것은 미국이 전쟁 일보 직전에 취하는 조치였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볼 때 미국이 유엔 제재와 별도로 북폭(北爆)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됐다. (중략) 그날 새벽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거세게 몰아붙였다.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 (상), p.315)

서울의 주한 미 대사관에서 정치과장으로 근무하였으며 미국 국무부의 한국과장을 역임한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세종연구소 펠로우는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김영삼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윌리엄 페리가 누차 말했듯, 그가 국방부 직원들에게 북한의 핵 시설을 폭격하는 비상대책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페리는 결코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그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페리 전 장관 또한 북한이 서울에 반격을 가할 위험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페리 전 장관은 또한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 폭격이 필요하다고 여겼다면 응당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 협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수년간에 걸쳐서 나는 당시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두 명의 미국 관계자와 두 명의 한국 관계자로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 김 전 대통령이 그런 주장을 했는지는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트럼프가 ‘군사적 행동’을 언급할수록 북한 문제는 더욱 악화되는 까닭)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과거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에서 보다 노골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말은 거짓”이라고 말한다:

갈루치를 포함한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핵심 당국자들이 쓴 책에는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가 나와 있다. 전쟁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그해 6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는 기록은 없다. 김영삼 대통령의 그런 말에 얼마나 열받았으면, 백악관의 통화 기록을 다시 뒤져보았겠는가. 그리고 이들은 덧붙인다. “북한에 대한 제재를 시종일관 밀어붙인 것은 김영삼 대통령 자신이었고, 한국은 미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었다.”(<북핵 위기의 전말: 벼랑 끝의 북미 협상>, 조엘 위트·대니얼 폰먼·로버트 갈루치 지음) (한겨레21 2009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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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 코리아 2017.04.12 – 트럼프가 ‘군사적 행동’을 언급할수록 북한 문제는 더욱 악화되는 까닭

http://www.huffingtonpost.kr/david-straub/story_b_159336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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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2009.03.04 – 김연철의 냉전의 추억 전쟁 문턱까지 갔던 94년 6월

북-미 협상 길목 막은 YS 고집이 ‘불바다’ 발언 불러… 언론도 ‘사재기’ 부추겨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4455.html

 

전쟁 막았다는 YS 회고는 거짓

대표적인 것이 김영삼 대통령의 회고다. 그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하고 그때 대판 싸웠습니다. 그때 내가 싸우지 않았다면 아마 ‘남북전쟁’이 일어났을 거예요.” 이 말은 이후 ‘한국도 모르게 미국이 전쟁을 검토했다’는 기억을 만들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의 말은 거짓이다. 갈루치를 포함한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핵심 당국자들이 쓴 책에는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가 나와 있다. 전쟁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그해 6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는 기록은 없다. 김영삼 대통령의 그런 말에 얼마나 열받았으면, 백악관의 통화 기록을 다시 뒤져보았겠는가. 그리고 이들은 덧붙인다. “북한에 대한 제재를 시종일관 밀어붙인 것은 김영삼 대통령 자신이었고, 한국은 미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었다.”(<북핵 위기의 전말: 벼랑 끝의 북미 협상>, 조엘 위트·대니얼 폰먼·로버트 갈루치 지음)

그때 전쟁으로 몰아간 것은 김영삼 대통령의 무능과 대북 강경파들의 오기였다. 미국에서 군사적 선택은 협상을 통한 해결 가능성이 멀어졌을 때 논의되기 시작했다. 누가 협상의 길을 막아섰는가. 김영삼 정부의 책임이 크다. 한-미 관계에서 ‘한바탕 소동’으로 기록된 1993년 11월 한-미 정상회담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자리에서 한-미 양국의 외교 실무자들이 합의한 ‘포괄적 접근 방안’을 김영삼 대통령은 현장에서 뒤집었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과 미국은 다시 대화를 시작했고, 1994년 2월18일 이른바 ‘슈퍼 화요일 합의문’을 만들었다. 그해 3월1일 화요일을 기해 팀스피릿 훈련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남북 특사 교환, 그리고 3월21일 북-미 회담 개최를 동시 발표하자는 묘안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이후 어떻게 대응했는가. 특사 교환을 위한 남북 대화를 북-미 회담 이전에 반드시 해야 한다는 고집을 부렸다. 남북한의 상호 불신이 여전한 상황에서 남북 대화를 북-미 대화와 연계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화가 제대로 되겠는가. 3월19일 ‘불바다’ 발언은 어쩌면 예고된 사건이었다. 박영수 북쪽 회담 대표는 송영대 남쪽 대표에게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결코 그쪽이 전쟁을 강요하는 데 대해서는 피할 생각이 없다. 전쟁의 효과에 대해서 송 선생 쪽에서 심사숙고해야 한다.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만다”고 말했다.

그해 5월 국회에서 국방부 장관이 한-미 연합군의 전쟁 계획을 상세히 밝힐 때, 레이니 대사는 미 조지아주로 달려가 오랜 친구인 카터 전 대통령에게 부탁을 했다. ‘제2의 한국전쟁’을 막는 데 앞장서달라고. 카터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를 마다하지 않았을 때, 김영삼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카터의 방북은 실수’라고 비난했다. 미국은 카터의 방북을 내켜하지 않았지만, 결국 카터-김일성 회담 결과를 협상 국면으로 전환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김영삼 정부는 위기관리 능력도 없으면서 위기를 부추겼다. 그런 점에서 6월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한국 사회를 휩쓴 사재기 열풍은 ‘만들어진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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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한겨레21에 나온 기사 내용은 모르고 있었지…?

한국 보수 강경파들은 정말 꼴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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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MayBeMayBe

April 12, 2017 at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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